“축하드려요. 이제 완치예요.” 진료실에서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지만 마음속엔 묘한 감정이 일었습니다. ‘이제 괜찮은 건가?’, ‘진짜 끝난 건가?’ 기다려온 말이었지만, 막상 듣고 나니 가슴 한편이 허전했습니다. 갑상선암은 비교적 예후가 좋은 암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별 거 아니잖아”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받고, 호르몬 수치를 관리하며, 몇 년에 걸친 추적검사를 거치는 그 시간들은 단지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완치’란 단어는 언제나 명확할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여러 층의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이 글은, 갑상선암을 경험한 한 사람의 시선으로 ‘완치’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기록하고자 합니다.

완치라는 말은 의학적일 뿐, 감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의사는 혈액검사 수치와 초음파 영상, 조직 검사 결과 등을 종합해 “완치”를 선언합니다. 수술 후 일정 기간 동안 재발이 없고, 호르몬 수치가 안정적이며, 이상 징후가 없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환자에게 ‘완치’는 숫자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정말 다시는 아프지 않을까?”, “혹시 또 생기진 않을까?” 하는 불안과의 싸움입니다. 완치 진단을 받은 날에도, 저는 한동안 갑상선 주변을 무의식적으로 만지곤 했습니다. 조금만 피곤해져도, 이건 혹시 호르몬 문제일까 싶은 의심이 들었고요. 몸은 괜찮다고 해도, 마음은 아직 완치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해야 했습니다.
‘다시 나답게 사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거치는 동안, 제 삶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식단을 바꾸었고, 내가 내 몸을 돌보는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완치라는 말을 듣고 나니,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습니다. ‘이제 예전처럼 살아도 될까?’ 하지만 돌아가야 할 ‘예전’이 이미 바뀌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완치란, 다시 아프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새롭게 배워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속엔 더 섬세해진 자기 돌봄, 더 여유로워진 우선순위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통계가 말해주지 않는 이야기들
갑상선암은 생존율이 높고, 수술만으로도 예후가 좋은 암입니다. 그래서 종종 “축하할 일”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물론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완치 이후에도 남는 후유증들이 있습니다. 목에 남은 수술 흉터, 평생 복용해야 할 갑상선 호르몬제, 그리고 매년 찾아오는 추적 검사. 이 모든 것이 여전히 삶의 한 부분입니다. 특히 갑상선암은 수술 후 5년, 10년은 물론 20년 뒤에도 재발할 수 있는 암입니다. 그 가능성은 낮지만, 아주 드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완치 판정을 받은 이후에도 완전히 ‘끝났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기적인 검진은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마음의 안정과 연결된 생활 습관이 됩니다. ‘다시는 안 생겼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머뭅니다. 완치는 어떤 ‘종착지’가 아니라, 새로운 일상의 배경이 되는 조건처럼 느껴졌습니다. 통계는 말하지 않지만, 이 여정을 지나온 사람들은 압니다. 완치 이후에도 마음은 계속 완치를 향해 걷고 있다는 것을요.
나는 여전히, 그리고 다르게 살아갑니다
완치라는 말은 마침표 같지만, 사실은 쉼표에 가깝습니다.
그 뒤에도 삶은 계속되고, 나를 돌보는 일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합니다. 피곤이 쌓이면, 호르몬 수치를 걱정하게 되고 목 주변이 불편하면 예민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더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기쁨을 더 자주 발견하게 됐습니다. 갑상선암에서 완치된 지금, 저는 그전보다 더 다정하게 나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완치 이후, 진짜 ‘회복’의 시작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