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피곤하고 복잡한 하루를 보낸 후, 많은 사람들은 '심즈(Sims)'와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에 몰입하곤 합니다. 단순한 건축 게임 같지만, 심즈는 삶 자체를 디자인하는 일종의 '삶 시뮬레이션'입니다. 캐릭터를 만들고, 집을 짓고,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직업과 취미를 선택하며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이 게임은 마치 하나의 사회 실험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종 가능한 세계, 통제 가능성에 대한 갈망
현실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고,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심즈의 세계는 클릭 하나로 통제가 가능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침대에 눕고, 누군가와 싸우면 사과하거나 무시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용자의 의지대로 설계되고 조정됩니다. 이러한 통제감은 현실에서 자주 느낄 수 없는 감정이기에 더욱 매혹적입니다. 특히 삶이 어긋나 있다고 느끼는 순간일수록 우리는 더욱 심즈와 같은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과, 삶을 내가 조율할 수 있다는 착각이 주는 안정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상의 나는 누구인가 — ‘신’ 혹은 ‘거울’
심즈에서 플레이어는 일종의 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캐릭터의 외모, 성격, 경력, 인간관계를 마음대로 설정하고 조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지는 경험은 현실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기에, 인간은 그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심즈는 단순한 신놀이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플레이어가 만든 캐릭터는 어느 순간 자신을 닮아 있기도 하고, 때로는 현실에서의 억눌린 욕망을 투사한 전혀 다른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즉, 심즈는 나의 욕망, 상처, 혹은 바람이 반영된 무의식의 캔버스이자,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이런 삶을 살아보고 싶었지', 혹은 '이런 나는 되지 말아야지'라는 이중적인 감정이 뒤섞이며, 우리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관찰하게 됩니다.
실패해도 괜찮은 세계, 실존적 회피의 공간
현실에서의 실패는 실망과 좌절, 때로는 생계의 위협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심즈에서는 직장을 잃어도, 친구와 사이가 틀어져도, 언제든지 게임을 저장하거나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는 세계는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시뮬라크르"라는 개념을 통해, 현실보다 더 정교한 가상세계가 오히려 더 큰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즈는 바로 그런 세계입니다. 현실에서의 실존적 불안과 한계를 잠시 유예하고, 새로운 나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아가게 됩니다.
이상향을 설계하는 본능, 그 끝에 남는 질문
심즈를 플레이하다 보면, 일정한 루틴을 가진 삶을 만들고 싶어 하게 됩니다. 깔끔한 인테리어, 안정적인 직업, 좋은 대인관계, 규칙적인 취미생활. 우리는 그 안에서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꿈꿉니다. 그러나 플레이를 반복할수록 알게 됩니다. 완벽하게 설계된 삶이 오히려 지루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나 혼란이 있을 때 더 몰입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때 비로소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정말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내 삶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히 게임 속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실존에 관한 문제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지를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총합이 곧 나의 삶을 형성합니다. 심즈는 이 단순하지만 무거운 진실을, 너무나 부드럽고 유쾌한 방식으로 되짚게 만듭니다. 결국 심즈는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관찰하고, 꿈꾸고, 또 돌아보게 됩니다. 가상세계에 몰입하는 우리의 심리는 어쩌면, 존재론적 목마름을 채우기 위한 작은 실험일지도 모릅니다.